조국통일위원회
이북의 인민들은 굶주리고 있는가? 5
2000년에 금강산에서 남북농민대회가 있었다.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북의 농사가 형편 없다 했다. 행사에 참여했던 한 군농민회의 간부의 판단에 의하면 이북의 농사가 흉작 원인을 비료부족에서 찾았다. 군농민회 간부라 하여 별 수 있겠는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신문, 잡지 등에서 맨날 떠들어 대는 것이 <이북의 비료부족>이다 보니 맨날 그런 소리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눈에 이북 지역의 흉작이 비료하고 연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쪽의 대중들은 수 십 년 동안 혹독한 반공반북 세뇌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세월과 그 혹독함이라면 흑을 백으로 바꾸고, 백을 흑으로 믿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세뇌되었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능이 인위적으로 제거된 상태다.
농민이라면, 이북의 식량사정에 대해서 농사경험을 바탕으로 상식적으로 접근해도 거짓선전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세뇌되었기 이북에 관한한 상식적인 인지 능력도 결여되는 것이다.
금강산 지역의 농지는 모래땅이다. 앞에는 바위산인 금강산이 높게 솟아있고, 농지 양편으로는 산지가 이어져 형성되어 있다. 이런 지형에 형성된 농지는 대부분 모래땅이기 쉽다.
모래땅에서는 농사가 잘 안된다. 이 점을 모르는 농민들은 없으리라. 더군다나 2000년 봄 가뭄이 심했다. 모래땅은 가뭄을 더 타기 마련이다. 가뭄이 심한 모래땅에 비료를 처질러 봤자 아무런 효과도 없다. 즉 당시 금강산 지역의 흉년은 모래땅과 가뭄이 주 요인이다. 농민이라면 상식적인 수준에서 그 원인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농민회 간부가 그 원인을 비료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농사를 짓는 농민회 간부가 이 정도이니 일반대중의 북에 대한 인식은 어떠하겠는가.
농사를 짓는 농민이 농사를 경험으로 해서 이북의 식량문제를 접근해 보자. 상식적인 선에서..........
남과 북의 경지면적에 있어서 북의 경지면적이 약간 많은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논과 밭의 비율은 남과 북이 반대다. 이점에 관해서는 별 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인구는 남쪽이 대략 4500만 명이고, 이북은 2300 만이라 한다. 이점 역시 이의가 없을 것이다.
남쪽의 농업정책은 사실상 <농업포기정책>이다. 농민이라면,특히 전농회원이라면 이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벼농사 짓지 말라는 정부 아닌가!
산골다랑이논 묵어 자빠지는 논 수두룩하다. 벼농사 지어서 돈이 안되다 보니 논에 인삼 심고, 포도나무 심고, 배나무 심고, 온갖 비닐하우스.........또한 호남일부를 제하고는 논에 보리를 심는 경우 거의 없다. 밭에 보리를 심는 경우도 거의 없다. 밀농사는 사라진지 오래다. 식량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밭에 수수나 조, 옥수수를 심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런 상태이다 보니 식량자급율이 30%가 안된다. 2003년을 기준으로 해서 남쪽의 곡물생산량은 708만 톤이고 이중 대부분은 쌀이다.
반면에 이북은 어떤가. 이북의 농업정책은 <식량자급>이다. 알곡생산에 가장 중점을 둔 농업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농민회 회원으로서 이점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농업포기 정책, 특히 알곡생산 농업정책을 포기한 남한의 2003년 곡물생산량이 708만 톤이라 했을 때, 이남보다 경지 면적이 넓고 식량자급, 알곡생산을 농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이북의 곡물생산량은 얼마나 될까?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라. 옥수수는 곡물에 포함되지만 감자나 고구마는 곡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감자나 고구마는 식량이 된다. 이 점도 감안해 보자.
민둥산? 이북의 산들은 모두 민둥산이어서 맨날 물난리가 나고 그래서 농업생산력이 형편없다라고 주장하는데..........그래 거짓 주장인 이북의 민둥산에 대해서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서 이야기 해 보자. 또한 이북은 농업이 발달되어 있지 못해서, 즉 기계화가 발달되지 못해서 농업생산력이 떨어진다고 구라를 치는데, 그런 구라도 사실이라고 전제하고서 이야기를 해 보자.
60년대 중반 남쪽의 인구는 현재 이북의 인구보다도 600만 명이나 더 많은 2900만 명이었다. 60년대 중반 당시 남쪽의 식량자급율은 무려 94%나 되었다. 당시 남쪽의 산들은 민둥산이 정말 많았다. 당시 농업의 기계화 수준이라는 것이야 말 할 것도 없이 원시적이었다. 그런데도 식량자급율이 무려 94%나 되었다. 인구가 현재 이북의 인구보다도 600만 명이나 더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 그렇다면 한 번 계산해 보자. 현재 이북의 경지면적이 남쪽의 60년대 중반수준과 같다고 보고, 이북의 민둥산 정도가 남쪽의 60년대 정도라고 하자. 그리고 이북의 농업발달 정도가 남쪽의 60년대 중반 수준이라고 하자. 현재의 이북이 남쪽의 60년대 중반 수준만 된다고 해도 현재 이북의 인구가 남쪽의 60년대 중반보다 600만 명이 더 적기 때문에 식량자급율은 남쪽의 94%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식량자급율은 고기 소비와 연동된다. 현재 남쪽에서 쌀은 자급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1인당 쌀 소비량은 70~80년대에 비해서 절반가량이 줄었다. 1인당 쌀 소비량이 70년대 수준이라면 현재 남쪽의 쌀 생산량 가지고는 50%정도의 자급율 밖에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남쪽 인민들의 1인당 곡물 소비량이 70~80년대에 비해서 줄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쌀 소비량이 준 대신, 밀가루 소비, 또는 고기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남에서 수입하는 골물 중에서 45% 가량이 사료용 곡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농사를 짓는 농민이라면 쉽게 알 수 있듯이 곡물 대신에 고기로 배를 채우려면 곡물로 배를 채우는 경우에 비해서 훨씬 많은 곡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곡물로 먹는 것에 비해서 고기로 먹으려면 4~5배 이상의 곡물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현재 고기 소비가 10%이고, 곡물소비량이 100% 자급이라고 할 때, 고기 소비를 20% 늘리게 되면 곡물 자급율은 90%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60년대 중반 남쪽에서 고기 쉽게 먹을 수 있었던가? 착취계급이야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호의호식하지만 60년대 중반 남쪽의 노동계급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명절에나 맛볼 수 있는 것이 고기였다. 고기를 먹으려면 곡물로 먹는 것에 비해서 몇배의 곡물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당시의 형편에서 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쪽은 자본주의 체제다. 개인이 먹고 사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책임이다. 반면에 이북의 사회주의 체제다. 먹고 사는 문제를 국가에서 책임진다. 정말로 이북의 인민들이 굶주린다면 이북에서는 가축을 사육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떤가. 이북에서는 대규모로 돼지와 닭, 오리, 개, 소, 물고기 등을 사육한다. 인민이 먹고 사는 문제를 국가에서 책임지는 사회주의 이북에서 인민들이 정말로 굶주린다면 어떻게 그렇게 대규모로 가축을 사육하겠는가. 만일 그랬다가는 민중혁명이 폭발할 것이다.
술은 뭘로 만드는가? 주 원료가 곡물이다. 이북에서는 인민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술도 희석식 술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들이 굶주리는데 이북에서는 어떻게 그토록 많은 술을 만든단 말인가.
이북의 농지는 국가 소유이거나 협동농자 소유다. 그만큼 수리화, 기계화를 이루기가 남쪽에 비해서 훨씬 유리하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남쪽에 비해서 수리화나 기계화가 발달되었다. 물론 반공반북에 철저히 세뇌된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 붕괴, 연 이은 자연재해, 그리고 미국의 경제봉쇄와 대북적대정책으로 인하여 이북의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다. 경제사정이나 식량사정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북의 인민들이 굶주려서 죽지는 않았다. 아니, 굶어 죽을 수 없다. 식량은 곡물만이 아니라 감자나 고구마도 훌륭한 식량이 된다. 감자나 고구마를 먹어도 사람은 굶어 죽지 않는다.
올해 700평의 논에 벼를 심었고, 비슷한 면적의 밭에 감자를 심었다. 감자의 경우 700평의 밭에서 20kg 박스 400개를 수확했다. 무게로 환산하면 8톤이 된다. 반면 벼는 수확해 보니 2톤이 수확되었다. 옥수수의 경우도 단위 면적당 수확량에 있어서 쌀보다 높다. 감자나 옥수수, 고구마 먹어도 죽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사회주의 이북에서는 농업생산을 정부에서 관장한다. 만일 정말로 식량이 부족하다면 감자나 옥수수 생산면적을 대규모로 확대하면 된다. 더군다나 감자의 경우는 2벌 농사가 가능하지 않은가?
어릴 적, 끼니로 감자나 옥수수, 고구마를 주면 먹지 않겠다고 투덜거리고, 밥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자식이 감자나 고구마 먹지 않겠다고 밥을 달라고 떼를 쓰면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부모는 어떻게 해서든 자식에게 밥을 먹이려고 한다. 그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니겠는가.
사회주의 이북에서는 인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국가에서 책임진다. 즉 이북에서는 정부가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모 역할을 하는 이북의 지도자 입장에서 인민들에게 쌀밥에 고깃국을 먹이고 싶지 않겠는가?
이북에서는 쌀이 부족할 수 있다. 부족한 쌀을 대북적대정책과 경제봉쇄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 그리고 미국의 그러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일본과 이남으로부터 배상차원에서 받아내는 것이다. 배상차원에서 쌀을 받아들여서 인민들에게 쌀밥을 먹이면 대체 되는 감자나 옥수수는 가축먹이로 돌릴 수 있고, 인민들에게 고기를 더 먹일 수 있지 않겠는가?
앞의 자료에서도 보았듯이 과체중 비율에 있어서 남과 북이 비숫하다. 남과 북의 과체중 비율이 비슷하다는 것은 먹는 것에 있어서 남과 북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증거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는 착취사회이다. 착취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착취당하는 노동계급을 우민화 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노동계급이 깨이게 되면, 즉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에 눈 뜨게 되면 착취사회인 자본주의 체제는 유지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계급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즉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사회주의 의식)을 못갖도록 하기 위해서 사회주의를 악마와 거지로 그려서 노동계급을 세뇌시켜야 한다. 구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국가보안법은 노동계급을 우민화 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즉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사회주의 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장치다. 이런 장치를 가동시켜 놓은 상태에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왜곡,날조,조작된 정보를 끝없이 주입시켜서 노동계급을 우민화 시키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이남이 이북에게 쌀을 주는 것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이남의 지배계급입장에서 보았을 때,이북에 주는 것이 아깝지 않는 측면이 있다. 왜냐면 이북이 <거지국가>라는 구라를 남쪽의 노동계급이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데 있어서 그만한 것도 없으니까.




댓글
없는 놈이 백성 먹여 살릴려면 사상전환하여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면 되는것 아니냐// 백성 굶주리는데 쓸데없는 사상에 빠져서...놈들의 근본은 적화통일 이기때문에 국가보안법이 있는 것 아니냐.. 계백장군 필명이 아깝소...
수준이 너무 유치합니다.
어릴때 학교에서 반공 이데올로기 편향된 주입식교육처럼...
장군님 입장에 서서 너무 핥는것 같네요.
역겹습니다. 장군님의 뜨거운 맛을 보기는 하셨나 ?
그렇게 좋으면 이북가서 사세요.
사료도 중국에서 구걸해다 먹는다는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