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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전용철농민 살인치사 은폐왜곡 진실을 밝힌다.


일시 : 2005년 11월 27일(일) 오후 3시
장소 :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영안실 4호실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고 전용철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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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용철농민 살인치사 은폐왜곡. 진실을 밝힌다.>

1. 사건 당시 상황 재구성(고 전용철 농민의 행적을 중심으로)

2. 15일 농민대회 당시 전용철 농민 관련 목격자 진술서

증언1)
고 전용철 동지, 공권력에 의한 집단구타 이후 최초목격자의 증언문
호서대학 4학년 임나영

지난 2005년 11월 15일 ‘전국농민대회’ 현장에서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진압 속에 고 전용철 동지를 보내게 되었다는 것에 슬픔을 표합니다. 동지의 죽음이 명백한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라는 것을 증언할 수 있는 최초 목격자로써 언론과 정부 당국의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작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각오로 본 글을 작성합니다.

1. 작성자
임나영(83년생, 23세) : 02년도 호서대학교 입학
호서대[호서문화]교지편집위원회 활동 중
민주노동당 충남도당 호서대 학생당원

2. 고인과의 친분 배경
2004년 8월 초 민주노동당 충남도당 학생위원회의 지역(충남) 연대활동인 ‘희망’ 활동(지역 사업장이나 농민회 등을 순회하는 형식)에 학생당원으로써 결합하여 활동하였다. 당시 한 활동으로 보령 농민회의 ‘쌀 수입개방 저지, 이경해 열사 정신계승 9. 10 농민대회’준비를 돕고, 고인의 댁에서 하루 밤을 묶으며 고인과 알게 되었다. 이후 지역(충남) 및 전국 투쟁 시에는 항상 고인을 찾아뵈오며 친분을 다져왔었다.

3. 지난 11월 15일 전국농민대회 당시 고인을 뵙게 된 정황
본 대회를 무사히 치루고 ‘상여 국회 진출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있었으며 이에 본 대오는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약 4시~4시30분경으로 추정) 민주노동당 충남도당의 학생당원이니만큼 그 깃발아래 찾아 섰을 때 몇몇의 충남도당 당원이 모여 경과를 살피고 있었고, 이쯤(산업은행, 조형물 근처)에서 고 전용철 동지를 뵙게 되었다. 고인이 먼저 나를 알아보셨으며, 당시 대화를 정확히 기록 하면 다음과 같다.
고인; (나를 알아보시고 툭 건드리며) 야!
나; 엇! 안녕하세요?
고인; (약간 끄덕이며)어...
나; (당시 상활을 생각하며) 괜찮으세요?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고인; 어... 여기저기 맞았는데 다른 곳은 괜찮아, 근데
(손으로 머리 뒷부분을 만지며) 여기가 좀 아프다.
나; (걱정스런 마음에) 어떻게 해요...
고인; (아무렇지 않다는 듯) 괜찮아...!
나; 그런데 대오와 떨어지셨나봐요. 왜 혼자 계세요?
고인; 모르겠다. 정신이 없다.
... 생략 ...
당시 고인을 뵈었을 때 외관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출혈 등의 모습은 미쳐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폭력 진압 사실도 있고, 고인의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과 머리카락이나 옷매무새 등이 흐트러져 있었던 모습을 보아서도 전경에 의한 집단구타를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과정에서 안부를 묻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인의 괜찮다는 말씀에 무심코 넘겼다. 그 이후 고인은 사람들을 찾겠다며 나섰다가 돌아오셔서 함께 계셨다가, 어느 순간에 함께 있지 않음을 확인 하는 등 당일 약 3~4차례 뵈었었다. 그중 마지막으로 뵙게 된 것은 공권력이 국회의사당과 여의도공원 사이의 도로에까지 폭력과 함께 달려든 후, 그리고 본 대회가 열렸던 무대에까지 치고 넘어가기 전, 국기봉 쪽 잔디밭에 도망쳐 있을 때였다. 그곳에서도 잠시 함께 계셨다가 국기봉 쪽으로 가시는 것을 뵌 것이 마지막이다. - 끝 -


증언2)
11월15일 농민대회에서 전용철 동지 목격 상황
민주노동당 보령지구당위원회 사무국장 김경구

서울에 같은 버스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여의도 집회 장소에 함께 있었습니다.
집회가 마무리 된 후 행진을 하고 국민은행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후 갑자기 물대포를 쏘고 전경(의경)들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1차적으로 대오가 후퇴를 하고 하나은행(?) 까지 밀려난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같이 나왔다가 공원뒷부분(국회쪽) 구멍가게 근처에 있다가 다시 하나은행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갔을 때 본 사람이 배종수 보령시 농민회 부회장님(한 노인분이 전경들 뒤쪽에 있다고 모시고 와야한다고 하셨음)과 김석진 농민회 회원(당원)과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는 국회를 바라보고 오른쪽 인도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왼쪽 부분을 봤을 때 (전 도로에서 중간 좌측 부분) 전용철 주교면지회회장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가서 괜찮은가 하고 물어봤고 걱정하지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몸 조심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고 다시 돌아오면서 봤을 때 전용철 면지회 회장님은 전경(의경)들에게 쌀수입개방 관련에 대해서 훈계하시며 너희들이 이러면 되겠냐며 말씀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에 전경(의경)들이 쳐들어왔고 그 때 다시 여의도 공원 뒷부분까지 밀려났습니다.

그 이후 다시 집회장소로 또 밀려났고 이병훈 주교면 총무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더 대오가 흩어지거나 만나면 공원안에 태극기가 걸려있는 곳으로 모이라고 하셨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병훈 총무님이 전용철 회장님을 봤는지 물어봤고 제가 본 위치를 가르쳐 드렸습니다. 이병훈 총무님은 사람들을 챙기며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다시 이병훈 총무님을 만났습니다. 전용철 회장님이 안보인다며 말씀을 하셨고 너는 태극기 있는 곳에서 사람들을 챙기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시 대오가 집회장소로 밀고 들어왔고 그 이후부터 저는 대오를 찾으며 혼자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돌아다니던 중 천안에서 올라온 여성동지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동지들에게 전용철 회장님을 찾아야 한다며 다시 헤어졌습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이병훈 총무님과 연락을 취해서 만났고 몇몇 사람들을 더 만나서 버스가 있는 곳(공원과 금감원 그리고 한화증권(?)의 삼거리 지하철 역방향 금감원 근처 주차)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버스안에는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고 전용철 회장님만 안계셨습니다. 그래서 몇 사람이 찾으러 나섰습니다. 저는 한화증권(?) 쪽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건너갔을 때 전경(의경)들이 어떤 사람을 체포해서 끌고 갔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너무하다며 웅성웅성 하고 있었습니다.
좀 더 갔을 때 전용철 회장님이 도로변 난간(사람들 넘어가지 말라고 박아놓은 파이프)이던지 아니면 나무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손을 짚고 몸을 기대고 있었습니다.

저는 형님 괜찮으신가고 물어봤고 다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 때 형님은 저를 보자마자 이제 집에 가고 싶다. 나 이제 집에 가고 싶다. 힘들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축을 해드렸을 때 팔은 놨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터벅터벅 저를 뒤따라서 걸어오셨습니다.
걸어가면서 이병훈 총무님께 용철형님 찾았으니 돌아오라고 전화하였습니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조수석 방향 앞 의자에 앉자마자 바로 몸을 옆으로 뉘우시고 주무셨습니다.

내려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렸을 때 화장실을 가셨습니다. 당시 저는 버스에 앉아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전용철 회장님이 안나오셔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고 한참후에 나왔을 때 조금 걷다가 바로 주저앉으셨습니다.
제가 나가서 버스 타자고 말씀을 드렸고 부축을 해드리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중간에 대천을 거진 와서 밥을 먹었을 때 전용철 회장님은 버스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보령 주교에 도착을 해서 전용철 회장님을 모시고 마을 청년회관으로 부측을 해서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형님을 본 것은 영정사진의 얼굴이었습니다.

증언3)
故 전용철동지 사건현장 증언
김장택(전농 제주도연맹 조천읍농민회장/ 전농 제주도연맹 북제주군농민회장)

본인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조천읍지회 회장 겸 북제주군 농민회 회장으로서 2005년 11월 15일 서울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해질 무렵(18:00에서 19:00 사이로 추정)쯤에 국기게양대(광장동쪽) 주변에서 10여명의 동료들과 같이 미처 합류하지 못한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가 국기게양대 북쪽(국회 쪽)에서 경찰들이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채 광장 쪽으로 몰려왔다. 본인은 동료들과 함께 뒤로 피했다. 경찰들이 무대 쪽에 대열해 있자 국기 게양대 쪽으로 갔다. 게양대 부근에 경찰이 지나갔던 그 자리에 농민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몇 명의 농민들이 주변으로 모여 들었고, 본인도 그 쪽으로 갔다. 쓰러진 농민은 움직임이 전혀 없었고, 누군가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고 외쳤다. 무대 쪽으로 옮기면 구급차가 곧 도착할 거라고 누가 말했다. 옮기자고 했더니, 혹 척추손상이나 머리에 부상이라도 있으면 더욱 악화될 수 있을 거라고 하며 구급차를 기다리기로 하자고 했다. 어느 분이 이 차가운 곳에 두면 더욱 위험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옮기자고 했다. 네 명에서 앞 뒤로 들고 이동했다. 경찰들은 무대 쪽에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사람이 죽어간다고 외쳤다. 이 놈들아 사람이 죽었단 말야 하면서 경찰들의 대열을 헤치고 무대 쪽으로 갔다. 경찰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무대 뒤편에 거적을 깔고 쓰러진 농민을 눕히고 본인은 게양대 쪽으로 돌아왔다. 동료들이 행방이 걱정됐기 때문에 쓰러진 농민을 뒤로한 채 게양대 쪽으로 돌아온 것이 이 사건에서 본인이 목격하고 행동한 내용의 전부다. 한 점 보태거나, 빼거나 한 점이 없다는 것을 양심을 걸고 맹세하며 진술에 임한다.

증언4)
故 전용철동지 사건현장 증언
정태문(전농 제주도연맹 성산읍농민회장/전농 제주도연맹 정치위원장)

청보리사랑의 노래가 끝나고 대회가 마무리 될 때였으니까 추정하건데 6시쯤 됐던것 같다. 청보리사랑은 노래는 부르지 않았지만 무대 위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밖에서는 이미 싸우고 있었고 안에서는 불 쬐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역 버스를 타러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거의 정리되는 분위기였던 거 같다.
(대회때도 몇번 침탈당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침탈당하고 대오는 거의 빠진 상황이었는데 도여농과 우리 회원들 대부분은 국기게양대쪽에 있었다.
의경들이 지나간 후 보니깐 한사람이 가만 누워있었고, 죽은거 같아 맥을 짚어보니 맥은 뛰었었다. 강순희 도여농 사무처장한테 구급차를 부르라고 해서 구급차를 불렀으나 구급차는 오지 않았다. 아마 막혀서 못 들어왔던 것 같다.
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같이 네명이 무대 뒤쪽으로 들어 이동을 시켰다. 무대뒤쪽에 환자들을 치료하던 상황이라 그쪽으로 이동했다. 무대 뒤쪽으로 가니 아시바들이 쌓여있었고 그 위에 깔개(카페트같은거)가 있어서 그냥 아스팔트는 너무 차가울 것 같아 그것을 펴서 그 위에 환자를 눕혔다. 이동 후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가슴 등을 눌러봤다. 잠시 후 깨어났는데 맞았냐고 질문을 해도 바로 전상황에 대해 전혀 기억을 못했다. 술은 거의 아니면 전혀 마시지 않은 것 같았다. 냄새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참고로 정태문회장은 술을 마시지 않음) 괜찮냐는 질문을 재차 하니 일어나서 걸어서 이동했다. 가는 것을 보고 국기게양대쪽으로 다시 이동했다.

증언5)
집회에 함께 참석한 보령농민회가 말하는 사건 경위
지난 15일 여의도 농민대회 중 4시 30분경 1001 전경(의경)들이 대오에 폭력적으로 방패 및 곤봉을 휘두르며 밀고 들어왔고, 당시에 윤철중 성주면지회회장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서로 다치지 말자며 약속을 하고 침탈로 인해 뒤로 밀려나는 중 다리가 불편한 성주면지회회장님은 몰매를 당하고 머리 및 눈에 타박을 입고 몸에 방패가 찍혔습니다. 그 와중에 전용철 지회장님께서 같이 폭행을 당하다가 대오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보령에서 함께 올라간 대오가 계속해서 전용철 지회장님을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전 대오가 다시 집회 장소로 집결하여 각 시군별로 대오를 정리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무렵 저녁에 전경(의경)들이 집회장소를 침탈하였고 농민대오가 경찰들에게 밀려 광장에서 거리로 나오면서 대오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녁이라 어두워서 모두가 대오를 찾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이후 서로 연락이 취해져 보령농민들의 대오가 다시 모여 귀가버스 차량에 승차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용철 지회장님은 그 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귀가버스 탑승후 30분 이상 보령농민들이 전용철 면지회회장을 찾았고, 발견당시 도로변 난간을 붙들고 계시는 전용철 지회장님을 발견을 하였습니다.
발견당시 옷이 찢어져 있었고 눈 부위에 타박상을 입었으며 후두부에 또한 빨갛게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몹시 피곤한 상황에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며 말씀을 하셨고 말을 횡설수설 하셨습니다. 그리고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맨 앞 의자에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고 계셨습니다.

중간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들렸는데 화장실에서 나오시지 못하고 계속 앉아만 계셨습니다. 그리고 차량까지 이동 중에도 한 차례 주저앉았습니다.
귀가 후 16일 주교면 청년회관에서 농민회원이 밥을 시켜주었고, 조금 먹다가 구토하였습니다. 그 후 본인이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17일 오후 5시경 전용철 면지회장은 잘 앉지도 못하였고, 몸이 자꾸 좌측으로 기울고, 누운채로 소변을 보았습니다. 이 것을 발견한 농민회 회원들이 평소의 전용철 회장의 모습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급히 보령병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동 후 주치의에게 15일 집회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였고, CT결과 뇌출혈 판명 긴급히 보령병원에서 119로 충남대 병원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충남대 병원에서 확인한 부상부위는 왼팔 상박부에 큰 타박상을 입었고 오른쪽 눈 부위에 심한 멍이 있었으며 오른쪽 가슴부위에 동그란 멍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뇌출혈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긴급 뇌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20일 보령 농민회 회원들이 면회를 갔습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 있어서 전부 면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며 지켜보자고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23일 자정 무렵 갑자기 동공이 풀리는 등 상태가 악화되어(주치의 상황설명) 재수술 필요성을 느껴 전용철지회장님의 동생 전용범에게 유선으로 알려와 수술동의를 하였고 다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주치의로부터 수술도중 생존가능성이 희박하다하여 호흡기를 장착하고 보령으로 이송중 운명하셨습니다.

3. 국과수 수사발표문 및 은폐의혹 정황

1) 국과수 발표에 대한 의학적 의혹은 별도로 의료계의 의견을 첨부

2) 국과수 발표에 대한 범대위 입장
애국농민 고 전용철 사망관련 국과수 발표에 대한 범대위 입장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짜맞추기식 은폐조작을 중단하고 진실을 말하라!]

어제(11월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전용철 농민이 이유는 모르지만 뒤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쳐 뇌출혈로 사망했으며 몸 전신에서 발견된 피멍은 치료과정에서 생긴 것,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전용철농민이 넘어졌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는 요지의 부검결과를 발표하였다.

범국민대책위는 이러한 국과수의 부검결과 발표를 단 한마디도 인정할 수 없다.

국과수의 발표는 부검전부터 “고인이 집앞에서 넘어져 부상당했으며 평소 지병이 있었다”는 경찰측의 주장을 교묘하게 합리화하고 있으며 유족측 입회인으로 참석한 원진호외과원장의 견해와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과도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

원진호원장에 의하면 어깨, 엉덩이, 좌측머리에 맺힌 피멍등은 수술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소견과 함께 ‘넘어져 머리를 부딪혔다’라고 단정적으로 부검소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농민대회 당시 현장에서 부상당한 고인을 직접 만난바 있는 목격자의 진술은 더더욱 국과수의 결과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한 농민대회 당시 함께 참석한 주변 농민들의 증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당시 경찰에 의해 집중적인 구타와 폭행을 당한 정황을 미루어 볼 때 고인도 그 당시 부상당한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경찰은 마을 주민을 상대로 16일 마을에서 고인이 쓰러진 것을 목격한 사람을 찾는다며 은근히 이러한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하려하고 있다.
결국 경찰과 국과수가 진실을 왜곡하고 짜맞추기식 여론몰이를 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3) 국과수의 허위감정사례

□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관련
- 유서대필사건 국과수 재감정해야

□ 국과수 김형영씨 허위감정 관련 사건
-뇌물받고 구속돼도 버젓이 ‘법원 문서감정사’
-허위감정 김형영씨 법원 3곳, 문서감정사로 등재

□ 김순경 사건
-“국과수 감정결과 맹신에 허점/현상태로는 전문성·정확성 기대어려워”

□ 대학생 ‘억울한 옥살이’ 논란
- 오토바이 잘못 운전해 친구 사망” 구속뒤 무죄판결/가족들 “운전자 조작 의혹” 검찰 등 상대 소송 채비오토바이 운전을 잘못해 친구를 숨지게 한 혐의로 6개월간 구속되었던 대학생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가족들이 검찰의 편파수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허위감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 국과수, 화성여대생살인 DNA증거 훼손”
- 사건증거 분석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화성 연쇄살인사건' 해결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지난해 수원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용의자의 유전자 DNA샘플을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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