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자유무역 반대 투쟁의 날을 맞이하여
“WTO Kills Farmers!(WTO가 농민을 죽인다!)” 2003년 9월 10일, 멕시코 칸쿤에서 있었던 WTO 반대집회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경해 열사의 외침이었다. 열사의 죽음에 세계는 분노했다. 세계농민장으로 치러진 열사의 장례식에서 전세계 농민들은 WTO에 대한 투쟁을 다시금 결심했다. 열사의 기일은 자유무역 반대 투쟁의 날로 지정되었다.
열사의 죽음 이후 18년이 흘렀다. 18년간, 아니 열사의 죽음 이전부터 자유무역은 FTA를 무기로 WTO를 앞세워 농민을 비롯한 전세계 민중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었다. 도시의 빌딩숲부터 밀림과 초원, 사막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30년 동안, 자유무역은 ‘민중의 주머니를 털어 자본을 배불릴 자유’, ‘강대국이 약소국을 수탈할 자유’만을 대변해왔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UR, DDA, FTA로 이름만 바꿔가며 전세계에 걸쳐 가난, 굶주림, 자원의 약탈, 환경파괴를 가져왔다. 식량수출국을 식량수입국으로 전락시켰고, 수자원과 공공서비스를 사유화했고, 지역의 토종종자를 말살했으며, 전통적 농업양식과 공동체를 파괴했다. 국가는 주권을 잃고 초국적 자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유무역의 종말을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국경이 폐쇄되고 국가간 이동이 제한되고, 기후위기로 세계가 새로운 식량위기에 직면하면서 세계 각국이 자유무역과 작별을 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을 주장했던 이들은 이제 자국보호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농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각국은 위기 속에서도 자국 국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량주권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우리 앞에 찾아온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자본과 정책으로 전세계 농민과 민중의 목숨을 위협했던 자유무역은 그 생명을 다해가고 있다. 그 빈자리는 연대의 세계화와 농업의 지역화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자유무역의 숨통을 끊고 새롭게 식량주권의 시대로 나아갈 그 길은 전세계 농민과 민중들 스스로의 힘으로 열어갈 것이다. 이 길에 전국농민회총연맹도 앞장설 것을 다짐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자본의 이익 위해 농민 생존권 위협하는 자유무역 반대한다!
- 부채와 빈곤, 기아와 죽음을 가져오는 자유무역 반대한다!
- 농민을 공동체에서 쫒아내는 자유무역 반대한다!
- 농민의 존엄성, 자급,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통상질서 건설하자!
- 내가 이경해다! 농민을 다 죽이는 자유무역 반대한다!
2021년 9월 10일 서울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