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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
2004.12.14 19:05:38
결국은 또 다른 소영웅주의
-‘자유주의 연대’ 최선배에게 보내는 편지
이창기 기자
며달 전 우연한 기회에 선배와 대화를 나누다가 반북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무척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
선배가 총학생회 선거에 나갈 때 문화선전을 담당했던 내가 선전문을 쓰기 위해 선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 한없이 흘렸던 눈물도 기억이 나고, 강경대 열사 투쟁 때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며 분노하던 모습, 애인과 언약식에서 조국과 애인을 평생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던 모습 등등 선배와 함께 했던 수많은 장면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 선배가 했던 ‘이북동포들을 위해서 북한민주화를 해야 한다’는 말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선배는 소영주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선배를 걱정하는 마음에 이것을 말해주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선배에게 전화로 이 편지에 대한 양해를 구하면서 말하기도 했지만 논쟁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친구들과 모여 최선배에 대한 후배들의 입장을 발표하려고도 했지만 너무 가혹한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택하였습니다.
물론 선배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교훈으로 되기 때문에 그런 편지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선배는 대학시절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웠습니다. 누구보다도 적지 않은 구속과 수배생활을 했습니다.
과연 그것이 참다운 민중을 위한 마음에서 그런 것이었는지 형이 살아온 어려운 생활에 대한 분노나 자신의 기질에서 그런 것이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가는 다 없애야 한다고 학교에 주차해 놓은 고급 자가용 백밀러를 1시간이나 두들겨팼었는데 가난한 친형이 자가용을 사는 것을 보면서 자가용은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깨달았다는 형의 말에도 자기중심적 소영웅주의가 들어있습니다.
부자도 돈을 내어 애국을 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을 터인데도 선배는 오직 분노만 있었습니다. 무조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분노하는 것 그렇게 튀여보여야 하는 것이 선배의 기질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것으로 들어났을 때 심각하게 반성하고 참다운 민중에 대한 관점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선배는 ‘아니면 말고’식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의도는 순수했다고 늘 생각합니다.
이북 정권은 주민들을 굶주림에 빠트렸다. 그러니 때려부셔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남쪽에서 민중을 고통 받게 하는 사람도 밉지만 북의 정권도 민중을 굶겼기에 밉다는 것입니다.
“북녘 동포들이 고난의 행군 시절 힘들게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북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북 동포들은 그런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주권을 지켜낸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만약 북녘 동포들에게 선배의 주장이 모독하는 것으로 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라고 내가 물었을 때, 선배는 또 아니면 말고 식이었습니다.
무론 장난삼아 한 말이지만 모 장기수 선생님이 “00 너는 착한 애니까. 통일이 되고 나서 깨닫고 이런 일 한 것을 반성하면 내가 구명해 줄께”라고 말을 했다면 웃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그때 가서 만약 내가 지금 한 일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반성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옳다고 확신 한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선배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자신의 정의심을 늘 폭발시킬 건수를 찾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평범하게 살기는 싫다. 나의 정의는 이북도 비판할 수 있는 지고지순의 경지에 올랐다고 무한한 자부심까지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북과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 반기를 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자신은 그런 안락에 기대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자기학대성 고행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선배에게는 민중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기질만 있습니다. 이것이 소영웅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 잘난 맛에 그것이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인지 아닌지 심각하게 사고하지 않고 무조건 행동하고 후에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입니까.
확신이 서지 않으면 확신이 서는 일만 하면 됩니다.
왜 이라크 민중을 억압하는 미국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가라고 했을 때 선배는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에 대해서 반대했습니까. 오히려 선배는 미국이 넣어준 돈으로 운영되는 단체에서 철저하게 미국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북의 민중들은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우리 정권을 바꾸려고 획책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말해왔습니다.
내가 북녘에서 취재를 해본 결과 북의 모든 동포들은 북의 정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과연 바보여서 그럴까요, 지금도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북의 정권은 흔들림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북의 정권에 이상 징후가 있다는 설들은 거짓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이 정도라면 선배가 북의 문제점에 대해서 아무리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해 왔다고 하더라도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명백하게 이라크 민중을 야만적으로 학살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타당합니다.
선배!
왜 그렇게 쉽게 그런 결정을 내려야했는가 라고 내가 탓하자 선배는 7년도 넘게 고민해온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꼭 신중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흙에 쌓여 있는 금을 백날 천 날 관찰하고 나서 흙이라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며 신중치 못한 것입니다. 뒤집어도 보고 파헤쳐도 보고 다방면적으로 깊이 있게 파악해야 본질을 찾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연구한 것이 신중한 것이고 정확한 진상을 밝히는 길이라면 북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는 단체는 미국의 공안기관과 우리나라 공안문제연구소의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번 북에 대한 판단을 잘 못해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김일성주석을 만나고 나서 미국 정가를 향해 ‘미국의 북에 대한 판단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만 보아도 그렇고 북녘동포들의 머리에 뿔이 안 달린 것으로 말했던 것도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폭넓고 객관적이고 본질적으로 연구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북녘 동포들 자체의 주장입니다.
나는 그래서 최 선배가 꼭 북녘을 방문해서 동포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볼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선배는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가. 그것도 바로 소영웅주의적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는 늘 분노하고 싶고 늘 투쟁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건덕지를 발견하면 무조건 빠져듭니다. 그렇게 7년을 연구를 했으니 당연히 북에 대해서 분노하고 갈아엎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배의 가치관은 민중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이 강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최근 선배와 함께 총학생회를 꾸려갔던 한 후배는 최 선배가 제발 동지들만은 팔아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누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이런 식으로 동지를 걸고넘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배들은 이것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상과 이념을 떠나서 초보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배는 13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아주 가볍게 그 선을 넘더군요. ‘이철우 의원과 중부지역당 당사자들이 그때는 재판장에서 주체사상을 믿고 따른다고 했다가 지금 와서는 변했네 어쩌네 하는데 비겁한 태도’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이러다가는 선배와 관계했던 사람들이 무서워서 살 수 있겠습니까.
계속 선배가 이런 식으로 가면 우리는 선배라는 말을 쓰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최 선배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아직도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한번의 실수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노동일 하시는 아버지의 월급을 모두 십장에게 떼먹혀 설 명절날 자식들에 밥도 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는 선배의 지난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민중의 아들로 태어나 민중들의 고통을 피부로 체현 할 수 있는 선배이기에 나와 많은 학교 친구들은 아직 형에 대한 기대의 끈만은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참답게 민중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모든 사고를 자기중심이 아니라 민중중심으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최 선배에게서 똑똑히 배우게 됩니다.
혹시 나에게도 그런 것이 없는지 오늘 밤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며 깊이 생각해볼 작정입니다.
-‘자유주의 연대’ 최선배에게 보내는 편지
이창기 기자
며달 전 우연한 기회에 선배와 대화를 나누다가 반북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무척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
선배가 총학생회 선거에 나갈 때 문화선전을 담당했던 내가 선전문을 쓰기 위해 선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 한없이 흘렸던 눈물도 기억이 나고, 강경대 열사 투쟁 때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며 분노하던 모습, 애인과 언약식에서 조국과 애인을 평생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던 모습 등등 선배와 함께 했던 수많은 장면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 선배가 했던 ‘이북동포들을 위해서 북한민주화를 해야 한다’는 말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선배는 소영주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선배를 걱정하는 마음에 이것을 말해주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선배에게 전화로 이 편지에 대한 양해를 구하면서 말하기도 했지만 논쟁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친구들과 모여 최선배에 대한 후배들의 입장을 발표하려고도 했지만 너무 가혹한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택하였습니다.
물론 선배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교훈으로 되기 때문에 그런 편지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선배는 대학시절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웠습니다. 누구보다도 적지 않은 구속과 수배생활을 했습니다.
과연 그것이 참다운 민중을 위한 마음에서 그런 것이었는지 형이 살아온 어려운 생활에 대한 분노나 자신의 기질에서 그런 것이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가는 다 없애야 한다고 학교에 주차해 놓은 고급 자가용 백밀러를 1시간이나 두들겨팼었는데 가난한 친형이 자가용을 사는 것을 보면서 자가용은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깨달았다는 형의 말에도 자기중심적 소영웅주의가 들어있습니다.
부자도 돈을 내어 애국을 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을 터인데도 선배는 오직 분노만 있었습니다. 무조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분노하는 것 그렇게 튀여보여야 하는 것이 선배의 기질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것으로 들어났을 때 심각하게 반성하고 참다운 민중에 대한 관점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선배는 ‘아니면 말고’식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의도는 순수했다고 늘 생각합니다.
이북 정권은 주민들을 굶주림에 빠트렸다. 그러니 때려부셔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남쪽에서 민중을 고통 받게 하는 사람도 밉지만 북의 정권도 민중을 굶겼기에 밉다는 것입니다.
“북녘 동포들이 고난의 행군 시절 힘들게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북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북 동포들은 그런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주권을 지켜낸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만약 북녘 동포들에게 선배의 주장이 모독하는 것으로 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라고 내가 물었을 때, 선배는 또 아니면 말고 식이었습니다.
무론 장난삼아 한 말이지만 모 장기수 선생님이 “00 너는 착한 애니까. 통일이 되고 나서 깨닫고 이런 일 한 것을 반성하면 내가 구명해 줄께”라고 말을 했다면 웃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그때 가서 만약 내가 지금 한 일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반성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옳다고 확신 한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선배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자신의 정의심을 늘 폭발시킬 건수를 찾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평범하게 살기는 싫다. 나의 정의는 이북도 비판할 수 있는 지고지순의 경지에 올랐다고 무한한 자부심까지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북과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 반기를 들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자신은 그런 안락에 기대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자기학대성 고행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선배에게는 민중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기질만 있습니다. 이것이 소영웅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 잘난 맛에 그것이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인지 아닌지 심각하게 사고하지 않고 무조건 행동하고 후에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입니까.
확신이 서지 않으면 확신이 서는 일만 하면 됩니다.
왜 이라크 민중을 억압하는 미국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가라고 했을 때 선배는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에 대해서 반대했습니까. 오히려 선배는 미국이 넣어준 돈으로 운영되는 단체에서 철저하게 미국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북의 민중들은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우리 정권을 바꾸려고 획책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말해왔습니다.
내가 북녘에서 취재를 해본 결과 북의 모든 동포들은 북의 정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과연 바보여서 그럴까요, 지금도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북의 정권은 흔들림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북의 정권에 이상 징후가 있다는 설들은 거짓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이 정도라면 선배가 북의 문제점에 대해서 아무리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해 왔다고 하더라도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명백하게 이라크 민중을 야만적으로 학살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타당합니다.
선배!
왜 그렇게 쉽게 그런 결정을 내려야했는가 라고 내가 탓하자 선배는 7년도 넘게 고민해온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꼭 신중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흙에 쌓여 있는 금을 백날 천 날 관찰하고 나서 흙이라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며 신중치 못한 것입니다. 뒤집어도 보고 파헤쳐도 보고 다방면적으로 깊이 있게 파악해야 본질을 찾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연구한 것이 신중한 것이고 정확한 진상을 밝히는 길이라면 북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는 단체는 미국의 공안기관과 우리나라 공안문제연구소의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번 북에 대한 판단을 잘 못해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김일성주석을 만나고 나서 미국 정가를 향해 ‘미국의 북에 대한 판단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만 보아도 그렇고 북녘동포들의 머리에 뿔이 안 달린 것으로 말했던 것도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폭넓고 객관적이고 본질적으로 연구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북녘 동포들 자체의 주장입니다.
나는 그래서 최 선배가 꼭 북녘을 방문해서 동포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볼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선배는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가. 그것도 바로 소영웅주의적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는 늘 분노하고 싶고 늘 투쟁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건덕지를 발견하면 무조건 빠져듭니다. 그렇게 7년을 연구를 했으니 당연히 북에 대해서 분노하고 갈아엎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배의 가치관은 민중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이 강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최근 선배와 함께 총학생회를 꾸려갔던 한 후배는 최 선배가 제발 동지들만은 팔아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누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이런 식으로 동지를 걸고넘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배들은 이것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상과 이념을 떠나서 초보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배는 13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아주 가볍게 그 선을 넘더군요. ‘이철우 의원과 중부지역당 당사자들이 그때는 재판장에서 주체사상을 믿고 따른다고 했다가 지금 와서는 변했네 어쩌네 하는데 비겁한 태도’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이러다가는 선배와 관계했던 사람들이 무서워서 살 수 있겠습니까.
계속 선배가 이런 식으로 가면 우리는 선배라는 말을 쓰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최 선배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아직도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한번의 실수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노동일 하시는 아버지의 월급을 모두 십장에게 떼먹혀 설 명절날 자식들에 밥도 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는 선배의 지난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민중의 아들로 태어나 민중들의 고통을 피부로 체현 할 수 있는 선배이기에 나와 많은 학교 친구들은 아직 형에 대한 기대의 끈만은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참답게 민중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모든 사고를 자기중심이 아니라 민중중심으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최 선배에게서 똑똑히 배우게 됩니다.
혹시 나에게도 그런 것이 없는지 오늘 밤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며 깊이 생각해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