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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윤정석 전농 고문님께서 2월28일 오전8시 영면하셨습니다. 

장례식장 : 선산제일병원 장례식장(구미시 고아읍 선산대로 1116)

구체적인 장례절차는 추후공지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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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촌놈

2016.02.28 16:09:39
*.101.232.122

우리농민활동에 대단한열정으로 임했던 분들이 진정한 우리농민들을 선구자일것입니다. 삼가고인을명복을빕니다. 사람들은 전농을반시민단체라고하지요. 저의다르지요. 전농같은농민단체가 없서다면 우리농민들이 이렇한대접도 받지못했을것입니다. 진보.보수모두중요합니다. 보수가너무강해도안되지요. 진보가 강해도 안되는것입니다. 서로힘이균형이 있을때 발전하는것입니다. 우리50대들은 그것을 너무도 잘알고있지요. 보수.진보을 모두경험했기때문입니다. 초등학교때는 (1970년대)반굥교육을받고 자라고 1980ㄴ녀대 중고등학교때는 진보에 영향이었지요. 1985년때 저의학교에 교생선생님이 오셨는데 대단한 민주화운동권학생이었지요. 그당시 학교에서 민주화교육을하면 큰일났지요. 우리학생들에겠 몰래민주화교육은고김대중전대통령민주화투쟁.광주사태에대한일등을 교육시켰지요. 그런던 이상한것은 그많은학생중에서 그선생님을교장선생님이나 다른선생들에겠 투고한사람은없서지요. 우리가학생일때 그당시에는 그래도 의리가 있서던것 같습니다. 저도 그때부터민주화투쟁에 동참했서지요.1987년때도참여했고 노동자투쟁. 농민투쟁에도 많이 참여했지요. 한번은 우리직장동료 회사원과 재개발반대투쟁에도 동참했서지요. 그형이 재개발되어 빈몸으로식구들과 거리로나와야 했을때 재개발세입자들과 함께 북치고구호및. 강력한투쟁을했지요. 나중에 그형은 그투쟁으로 작은아파트을 분양받을수 있서지요. 건설회사에서 재개세입자들이 완강하겠 저항하자 그사람들에겠 적은금액으로 아파트을 분양했주었지요. 3분1정도 금액 제생각에는 노동투쟁은 상당이 많이 참여했던것 같습니다. 우리나이 50대들이 많은사람들이 그렇한 투쟁을 했지요. 오늘날 그래도민주화가된것이 그분들을 투쟁때는일것입니다. 그때는 경찰및백골단에겠 동료가 맞으면 그백골단도죽도록맞아지요. 그때투쟁했던사람들은 죽기로 같이싸워지요. 1987년부터1997년전까지가 가장강력했던 노동 투쟁시기입니다. 그때젋은세대가 저의50대입니다. 그래도 그때가 동료외가대단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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